기독교

기독교가 직면한 12가지 질문(1): 우리는 종교 없이도 잘 살지 않는가?

이렁비니 2024. 4. 23. 09:15

사람들은 지난 수천년동안 종교를 가진채로 살아왔다. 그것이 불교든, 힌두교든, 사람들은 종교를 가진채로 살아왔다. 그러나 현재 과학이 발달하면서 종교는 구시대의 산물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은 삶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주는것같지만, 종교는 아무런 문제를 해결해주는것같지 않다. 큰병에 걸렸을때 이를 치유하는것은 의사와 병원, 의료기술이지, 치유의 기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이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좋은 직장, 높은 연봉, 배당금 등이 이 문제를 해결해준다. 종교는 아무것도 해결해주는것이 없는것 같다. 아니, 오히려 국제 뉴스를 보면 오히려 종교는 갈등만 더 부추기는것 같다. 중동 지역의 갈등, IS의 테러, 등등, 종교가 없다면 저들이 아무런 의미없이 죽을 일도 없었을것이다. 마르크스도 이런 주장에 동의했다.

칼 마르크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카를 마르크스)

 

라는 그의 말은 현시대에 어느정도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을것이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무신론적이고, 미래지향적이고 기술지향적이다. 기술 발달을 통해서 다 같이 잘사는 미래의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가는것이다. 스탈린은 실제로 이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서 농업 국가였던 러시아를 경제 개혁을 통해 공업 국가로 바꾸었다. 중간에 많은 삽질이 있었지만 공업 기술을 통해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러시아라는 국가는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소련이라는 강대국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이것처럼 기술은 멋진 미래를 가져다줄수있는것처럼 보인다. 현시대에서 ai, 로봇, 빅테크 등과 같은 과학기술들은 멋진 미래를 가져다주는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기술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것이다. 기술은 굉장히 가치중립적이다. 예를 들어 건축기술이란 것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이 기술을 통해 아파트를 만들어도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렇다면 언제 이 기술이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사람이 그 기술에 어떠한 가치를 부여할때 가치가 생긴다. 


지식은 무한히 공명정대한 것이고, 균형을 잡고 있는 무한한 무관심이다.
(키르케고르)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그래서 위와 같이 말했다. 지식과 기술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지식이, 혹은 기술이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기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주관적 가치관이 들어갈수밖에 없는것이다. 아파트를 짓는 건축 기술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는것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는 개인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돈에 가치를 두고있는 사람이라면 아파트를 통해 아파트를 통해 레버리지를 일으켜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려할것이다. 가정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면 아파트를 통해 새로운 가정집을 얻을것이다. 결국 사람은 항상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게되는데, 이를 결정짓는것은 기술이 아닌, 개인의 가치관이다. 

그렇다면 이 가치관을 결정짓는것은 무엇일까? 지난 수천년동안 이는 종교였다. 종교는 수많은 이들의 가치관에 대한 기준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이는 기술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슈바이처 박사

예를 들어, 기독교가 가진 "이웃 사랑"이라는 가치는 슈바이처가 의료기술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의료 선교를 하도록 만들었다.
슈바이처는 의료 기술이라는 무색무취한 기술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행동을 하기로 선택한것이다. 왜? 그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고 있었고, 그에 따라 돈보다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매번 마주치는 선택의 순간, 그 선택의 행위마다 우린 무의식적으로 각자가 가진 가치관에 따른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가치관을 결정짓는데에 큰 역할을 하는것이 종교이다. 

아니다, 종교없이도 나는 나의 가치를 스스로 판단한다, 라고 반문할수도 있다. 종교의 범위를 단순히 교회에 가거나 절에가는 행위로 한정짓게 된다면 그럴수도있다. 하지만, 종교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사람이 궁극적 가치를 두는 그 모든것들은 다 종교가 될수 있다. 만약 누군가가 돈을 인생의 궁극적 가치로 둔다면 그 사람은 "돈"이라는 종교를 믿는것이다. 혹은 "나 자신"을 인생의 궁극적 가치로 둔다면 "나 자신"이 종교가 되는것이다. 아까 말한 질문을 분석해보자면, 나의 가치를 스스로 판단한다는 말은 "나 자신"에 궁극적 가치를 둔다는 말이다. 결국 이는 "나 자신"을 종교로 가진다는 말이다. 요즘 대세가 되는 각자도생은 결국 "나 자신"을 믿는 종교인것이다. 결국 광범위한 범위에서 바라본다면 사람은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종교를 믿는다는것은 어떤 의미인가? 종교를 믿는다는것은 내가 어떤 궁극적 가치를 추구할것인지를 결정하는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는 본인의 행동으로 나온다. 타인을 돕는 행동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가치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이런 과정은 인생의 중요 선택의 순간마다 일어난다. 결혼을 할때, 직장이나 학교를 구할때, 인생의 메이저한 이벤트를 결정할때마다, 우린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를 기반으로 선택을 내린다. 

앞서 본 공산주의는 결국 실패한 혁명으로 끝났다. 스스로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비하했으면서 시간이 지나면 공산주의는 스스로 하나의 종교가 되었다. 결국 형식상의 종교는 없어질수 있더라도 본질적으로 종교를 없애기란 불가능하다.

 

그 외에도 총 12가지의 기독교가 직면한 질문들이 있는데 시간이 될때마다 한가지씩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