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나쁜것일까? 성경에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통과하는것보다 더 어렵다고 적혀있기도하다. 이 말만 들으면 부자는 탐욕스럽고 나쁜것처럼 보인다. 과거에 부를 축적하는 방식은 딱 하나였다. 바로 남의 재산을 가로채는것. 그것이 세금이든, 전쟁에서 승리한 후 얻은 전리품이든, 남의 부를 가져오는것이 부를 축적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파이의 크기는 일정하며 내가 이 파이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것이 부자가 되는 길이었다. 따라서 과거에 부자는 탐욕스러울 수 밖에 없다.
다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 마태복음 19장 24절 -
하지만 자본주의가 생겨나며 한가지 중요한 전제가 뒤집어졌다. 바로 파이의 전체 크기가 커질수 있다는 점. 그러면 이제 더 이상 탐욕스럽지 않아도된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내가 가진 파이는 점점 더 크기가 커질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이상 남의 파이를 뺏을 필요가 없다.
자본주의 시스템
요즘 트렌드는 부자는 생각보다 착하고 오히려 가난한 이들이 더 나쁘고 욕심이 많다고 말하는것 같다. 자본주의는 돈이 돈을 낳는 시스템이다. 돈을 누군가에게 빌려주면, 그 돈은 이자가 붙는다. 주식을 산다면 배당금이 들어온다. 부자들은 가만히만 있어도 돈이 불어나니 굳이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 과거처럼 그들은 남의 돈을 뺏어오는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돈이 스스로 증식하도록 한다. 오히려 돈이 많으니 기부를 하기도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자는 천국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만큼 어렵다는 말은 현재엔 틀린것처럼 보인다.
'돈' '가난한 자'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천국에 가는 것일까? 누가복음에는 천국에 간 거지 나사로의 예시가 나온다.
그 집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는 거지가 상처투성이 몸으로 있었다.
그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고 했다. 그런데 심지어는 개들마저 와서 그 상처를 핥았다.
- 누가복음 16장 20-21절 -
그는 왜 천국에 갈 수 있었을까? 그가 살아생전에 상처투성이에 개들마저 그의 상처를 핥을 정도로 비참한 인생을 살아서 그에 대한 보상으로 사후세계에선 천국에 가는 것일까? 16장 25절을 보면 그런 것처럼 보인다.
‘얘야, 네가 살아 있을 때를 기억해 보아라. 네가 온갖 좋은 것을 다 받는 동안 나사로는 온갖 나쁜 것만 다 겪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 누가복음 16장 25절 -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기독교의 교리를 알고 넘어가야만 한다. 바로, 기독교의 구원은 어떠한 행동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닌,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라는 것이다. 따라서 나사로가 비참한 인생을 겪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천국에 간다, 라는 인과응보적 사고는 틀린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일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 마태복음 5장 3절 -
아주 유명한 마태복음의 산상수훈 구절이다. 여기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물질적 가난이 아닌,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사회적 지위, 혹은 물질적 풍요와는 관계가 없다. 이것은 내가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어딘가에 의지해야만 하는 나약한 존재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에 의지한다. 따라서 그들은 '마음' 한켠에 의지할 '돈'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가난하지는 않다. 이것은 그 사람이 가난한지, 부자인지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가난하더라도 '돈'에 의지할 수 있다. 오히려 가난하기에 더 '돈'에 의지할 수도 있다. 돈이 없어서 겪는 서러움을 더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들의 마음 한 켠에는 '돈'이라는 의지할 기둥이 있다. 비록 현재 수중에는 돈이 없더라도 말이다.
따라서 그들은 '마음'이 가난한 것은 아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진짜 아무데도 의지할 곳이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정말 철저하게 버려진 이들이고, 철저하게 벌거벗겨진 이들이다. 이것은 돈이 많고 적음과 전혀 상관이 없다. 그저 자신의 벌거벗겨진 실존을 마주한 이들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초라함을 뼛속까지 경험한 이들이다. 그들은 의지할 곳이 없기에 하나님을 의지한다. 따라서 그들에겐 천국이 그들의 것이 된다. 의지할 곳이 없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간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