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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잔치과 예수 그리스도의 잔치

이렁비니 2024. 8. 14. 20:45

가나의 혼인잔치

신약성서에는 꽤 자주 식사를 같이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중 굉장히 많은 기적들이 실질적으로 먹거나 마시는 것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최초로 행한 기적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일어난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화가 '파올로 베로네세'가 그린 '가나의 혼인잔치'라는 그림이 있다. 그 유명한 모나리자의 맞은편에 전시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홀대받고 있지만, 이 그림은 세로 6.77m, 가로 9.94m나 되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큰 그림이다.

가나의 혼인잔치. 르네상스 시기, 교역으로 부를 쌓은 베네치아의 화려함을 잘 드러내는 그림이다.

 

모나리자의 맞은편에 있는 파올로 베로네세의 '가나의 혼인잔치'. 굉장히 화려한 혼인잔치처럼 그려진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 파울로 베로네제(PAOLO VERONESE, 1528-1588)는 베네치아의 산 조르조 마조레 수도원으로부터 수도원을 장식할 그림을 주문받는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에는 총 130여명의 등장인물이 그려지고, 피리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악사들이 흥을 돋구고, 참여한 이들은 하나같이 다 화려한 보석과 옷으로 치장한 상태이다.
그리고  잔치의 가장 중앙, 주인공 자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떡하니 앉아있다. 마치 이 화려한 잔치의 주인공처럼 그려진다.

사진의 중앙엔 예수그리스도가 앉아있다.

신과 함께하는 잔치라니.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가 행한 최초의 기적을 목도할 수 있는 자리라니. 많은 왕과 귀족들은 이 그림을 탐냈다고 한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이탈리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이 그림을 수도원에서 떼서 프랑스 파리로 가지고 왔다. 전 세계를 정복한 나폴레옹 마저도 함께하고 싶었던 잔치가 바로 이 "가나의 혼인잔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성경 속의 "가나의 혼인잔치"  또한 이와 같은 모습이었을까? 이것을 알아보기 전에, 그당시 이교도들의 잔치의 모습을 살펴보자.

이교도 로마인들의 잔치-사티리콘

서기 1세기, 아직 로마에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 로마인들이 벌인 잔치는 어떤 모습일까? 이에 관해 잘 묘사된 작품이 서기 1세기경, 네로 황제 시기 집정관을 지낸 "페트로니우스"가 쓴 세계 최초의 소설, "사티리콘"에 잘 드러나있다.

세계 최초의 소설이기도 한 "사티리콘". 많은 부분이 유실되었고, 가장 유명한 부분은 "트리말키오의 연회"이다.

주인공 엔콜피우스 일행은 부유한 트리말키오의 식사 잔치에 초대받는다. 트리말키오는 그 당시 로마에서 굉장히 넓은 토지를 소유한 부자였다. 그의 총 재산은 3000만 세스테르티우스라고 말한다. 1 세스테르티우스로는 꽤 큼직한 빵 두덩이를 살 수 있었다. 2007년도의 환율로 환산하면 약 3000원 정도 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총 900억원의 자산을 보유한 억만장자였다.

 

트리말키오로 말할 것 같으면 현재 연을 날려도 될 만큼 광대한 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억만장자입니다. 이 집 수위실에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합친 양보다 더 많은 은그릇이 잠자고 있습니다...(중략)... 그가 따로 돈 주고 사는 물건 또한 없습니다. 양모, 밀감, 후추 등 모든 게 그의 땅에서 나니까요. 그에게 암탉 젖을 청해도 아마 나올 겁니다. 에전에는 그가 생산하는 양모가 질이 그리 썩 좋지 못했지요. 그래서 타렌툼(현재 이탈리아 남동부)에서 숫양 몇 마리를 들여와 기존의 암양들과 교미를 시켰지요. 또 아테네산 꿀을 얻기 위하 아테네에서 벌을 들여와서는 기존의 벌과 교배해 품종을 개량하기도 했고요.
이게 다가 아닙니다. 며칠 전에는 인도에 버섯 포자를 보내라는 주문서를 발송했지요. 게다가 노새만 해도 야생 당나귀의 씨를 받지 않은 놈이 없습니다. 저기 방석들 보이시죠? 하나 같이 보라색 아니면 진홍색이잖습니까. 하늘이 낸 부자라고 할 밖에요!
(사티리콘 2부. 트리말키오의 연회 101p)

 

해당 서술을 보자면 트리말키오는 굉장한 부자였다. 로마를 넘어, 이탈리아 반도 전역, 그리스 아테네와 인도까지, 굉장히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 무역로를 이룬, 갑부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그가 연 잔치에는 어떤 음식들이 있었을까?

한바탕 박수갈채가 지나가고 나서 그 다음 요리가 나왔다. 사실 우리가 기대한 것만큼 그리 거창하진 않았지만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아주 참신했다. 가장자리를 따라가며 황도대의 별자리 열두 개가 새겨진 우묵하고 큰 원형 쟁반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각각의 별자리 위에는 거기에 어울리는 음식이 올라 있었다.
예를 들어 백양자리 위에는 병아리콩이, 황소자리 위에는 소고기가, 쌍둥이자리 위에는 고환과 콩팥이, 게자리에는 화환이, 사자자리에는 아프리카산 무화과가, 처녀자리 위에는 어린 암퇘지의 젖통이, 천칭자리 위에는 양쪽에 각각 다른 케이크를 얹은 저울이, 전갈자리 위에는 바다전갈이, 궁수자리 위에는 눈을 동그랗게 뜬 도미가, 염소자리 위에는 가재가, 물병자리 위에는 거위가, 물고기자리 위에는 숭어 두 마리가 올라 있었다. (사티리콘 2부. 트리말키오의 연회 95p)

 

그의 연회에는 황도 12궁을 테마로 한 12가지의 음식들이 올라온다. 한가지 더 예시를 들어보자면,

쟁반 위에는 엄청나게 큰 멧돼지가 놓여 있었는데, 그게 다가 아니라 머리에 자유민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엄니에는 야자나무 잎사귀로 만든 바구니 두 개가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는데, 한쪽에는 방금 딴 시리아산 대추야자 열매가, 다른 한쪽에는 말린 테바이(이집트 나일강 중류에 위치한 고대 이집트 수도)산 대추야자 열매가 담겨 있었다. 밀가루 반죽을 구워 만든 모형 새끼 돼지들이 마치 젖을 빠릇 돼지 주의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아무래도 암퇘지인 듯 했다. 모형 돼지들은 알고 보니 집으로 돌아갈 때 하나씩 싸줄 선물이었다...(중략)
그가 사냥룡 칼을 빼들고 멧돼지 옆구리를 푹 찔러 가르자 안에서 개똥지빠귀 떼가 푸드덕거리며 나왔다. 하지만 들새 사냥꾼들이 끈끈이를 바른 갈대로 무장한 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새 떼가 사방으로 날아가기 시작하는 순간 얼른 잡아챘다.
(사티리콘 2부. 트리말키오의 연회 107p)

 

멧돼지 통 바베큐를 하고, 그 안을 칼로 가르자 안에서 새 떼가 나오는 것. 이런 참신한 음식 메뉴를 2000년 전에 생각해냈다는 것은 대단한 것 같다. 아마 지금 이런 음식을 하는 레스토랑이 있다면 당장 인스타 핫플 성지가 될 것이다. 그의 연회는 음식만 화려한 것이 아니다. 볼거리도 풍성했다. 

마침내 곡예사들이 등장했다. 멍청하게 생긴 광대 하나가 사다리를 들고 서자, 같이 온 소년이 그 위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 후 불붙은 굴렁쇠를 통과해 이빨로 커다란 포도주 단지를 들어올렸다. (사티리콘 2부. 트리말키오의 연회 141p)

 

트리말키오의 잔치는 그야말로 화려한 음식과 다양한 볼거리들로 가득하다. 21세기에도 이런 잔치를 본다면 입이 떡 벌어질텐데, 하물며 2000년 전에는 어떠했을까.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상상하지도 못할만큼 큰 볼거리였을 것이다. 이런 잔치에 초대받았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도파민 자극이 엄청났을 것이다. 눈 앞에서 황도 12궁 테마에 맞춘 기상천외한 음식들이 나오고, 멧돼지 배를 가르니 새 떼가 나오고, 곡예사들은 눈 앞에서 불쇼를 하니... 2000년 전에 이런 화려한 구경거리를 보았다고 생각해보자. 눈 돌아갈만큼 즐거웠을 것이다.

스페인 화가인 '울피아노 체카'가 그린 '네로 황제 궁전에서의 연회'(1910). / 트리말키오의 연회 또한 이런 비슷한 연회이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잔치

아마 가나의 혼인잔치는 화려했다고는 하나, 트리말키오의 잔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초라했을 것이다. 먼저 혼인잔치가 열린 곳은 유대 땅에 위치한 갈릴리의 가나이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신랑, 신부측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잔치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 잔치를 온전히 감당할만큼의 부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만약 그들이 그정도의 재산이 충분했다면, 포도주가 떨어지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넘치도록 많은 양의 포도주를 준비했을 것일 테니까.

1 3일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서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도 그곳에 계셨고
2 예수와 제자들도 그 결혼식에 초대받았습니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다 떨어지자 예수의 어머니는 예수께 와서 “포도주가 다 떨어졌구나”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3절)

 

성경에는 가나의 혼인잔치의 주인공 신랑, 신부의 자산이 정확히 얼만지 나오지 않는다.

잔치의 규모 또한 어느정도인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비교를 해보자.

로마 제국의 중심지인 '로마'에서 열린 900억 자산가의 잔치
vs
로마 제국의 변방인 유대 속주 땅, 갈릴리의 가나에서 열린 혼인 잔치. 

 

둘 중, 어느 잔치가 더 화려할까. 아마도 전자가 훨씬 더 화려했을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혼인 잔치라는 점에서 화려하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는 손님의 자격으로 참석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 본인이 주최하는 잔치는 어떤 모습일까? 

잔치라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을 수도 있지만, '최후의 만찬'이 예수 그리스도가 주최하는 잔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주최한 만찬,  최후의 만찬

앞서 본 '사티리콘'의 주최자는 900억 자산가인 트리말키오였다. 그는 그의 부와 명성에 걸맞게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만찬 코스 요리와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자.

17.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드실 유월절 음식을 어디에서 준비하면 좋겠습니까?
18.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성안에 들어가 한 사람에게 가서 ‘우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때가 가까워졌으니 내가 그대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겠다 하십니다’라고 전하라.”
19.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께서 지시하신 대로 유월절을 준비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17-19절)

 

최후의 만찬은 전체적으로 기획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본인이다. 그렇다면 그는 이 만찬의 메뉴를 엄청나게 화려하게 기획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분은 빵과 포도주를 메인 메뉴로 가지고 온다. 생각보다 엄청 소박한 메뉴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분은 빵과 포도주로 들고 감사기도를 올린 후, 제자들에게 말한다.

26. 그들이 식사를 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을 들어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 떼어 제자들에게 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27. 그리고 또 잔을 들어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모두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위해 흘리는 내 피, 곧 언약의 피다."
(마태복음 26장 26-28절)

 

이상한 말이다. 실제로 이 구절 때문에 초기 기독교인들은 인육을 먹는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포도주 잔을 들면서, '너희 모두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위해 흘리는 내 피, 곧 언약의 피다."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마 많은 목사님들, 그리고 교회에서 이에 대한 설교와 교리적 해석을 할 것이다. 나는 신학자가 아니므로 이에 대한 의미적 해석은 잠시 그분들께 맡기자. 그리고 다시 트리말키오의 연회로 돌아가, 트리말키오는 포도주를 앞에 두고 무슨 말을 하는지 살펴보자.

곧이어 꼼꼼하게 밀봉한 포도주 병이 나왔다..(중략).. 
"포도주가 우리 불쌍한 인간보다 수명이 길지요, 그러니 실컷 마셔 봅시다. 포도주는 삶에 활력을 주지요. 이건 진짜 1)'오피미우스'올시다. 참고로 어제 연회 손님들은 수준이 훨씬 높았는데도 이렇게까지 훌륭한 포도주를 대접하진 않았소이다."
당연히 우린 포도주를 마시면서 주인의 환대에 찬탄이란 찬탄은 모조리 쏟아놓았다. 그런 가운데 노예 하나가 은으로 만든 2)인골를 들고 와선 관절과 등뼈를 잡아당기기만 하면 어느 방향으로든 비틀 수 있도록 조립했다. 트리말키오는 인골을 집어 식탁에 대고 몇 번 내리쳤고, 그때마다 인골은 관절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다양한 자세를 취했다. 잠시 후, 트리말키오가 시를 암송했다.

"오호 애재라, 인간은 한 점에 불과할 뿐.
저승사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로구나.
그러니 즐길 수 있을 때 실컷 즐겨보게나."
(사티리콘 2부, 트리말키오의 연회 93p)

 

1) 오피미우스: 기원전 121년에 집정관을 지낸 인물. 이 집정관이 통치할 당시 만들어진 포도주. 물론, 기원전 121년과 이 소설의 배경인 1세기 중반까지 100년 넘게 그당시 기술로 포도주가 보존될리가 없으므로, 그냥 '오래된 최고급 포도주' 정도로 여기면 될 듯.

2) 인골(인간 해골)은 식당 벽이나 마룻바닥의 프레스코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인간은 내일 죽을 운명이므로 오늘 즐겁게 먹고 마시라는 권고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트리말키오는 계속해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포도주가 가엾은 우리 인간보다 수명이 길다는 둥, 인간은 한 점에 불과하니, 즐길 수 있을 때 실컷 즐겨보자는 둥... 어쨌든 그가 말하는 연설의 요지는,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 현생에서 먹고 마시자'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인생 뭐 있어? 먹고 죽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에 반해 예수 그리스도는 포도주 앞에서 뭐라고 말했는가.

27. 그리고 또 잔을 들어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모두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위해 흘리는 내 피, 곧 언약의 피다."

 

트리말키오의 연설은 이해하기 쉽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 평등하게 찾아온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현생에서 지금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너무나도 쉽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연설을 보자. 알쏭달쏭한 말이다. 이것을 마시는데, 죄사함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위해 흘리는 내 피... 무슨 소리지?? 제자들이 그 뜻을 알았을까? 차라리, 기독교인들은 인육을 먹는 야만적인 집단이다, 라고 여기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쉽다.

잠시, 트리말키오가 포도주 앞에서 말한 연설과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주 앞에서 말한 연설을 비교해보자.

예수 그리스도 트리말키오
이 포도주를 마시라. 인간은 한 점 먼지에 불과하다.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언약의 잔이다. 우린 모두 죽을 운명. 이것을 피할 길은 없다.
이것은 죄 사함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위해 흘리는 나의 피, 언약의 피.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 연설은 어렵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트리말키오의 연설에는 '죽음'이 있다. 그리고 은연중에 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연설에는 '죽음'에 대한 언급이 없다. 잠시 앞으로 돌아가서 요한복음 6장을 보자.

그는 스스로를 '생명의 빵'이라고 소개한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내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복음 6장 35절)

 

이것을 앞서 본, 마태복음 26장 26절, "그들이 식사를 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을 들어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 떼어 제자들에게 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이 구절과 연관시켜 생각해본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빵을 떼어먹는 것은 분명 '생명'이다. 이것은 트리말키오가 말하는 피할 수 없는 '죽음'과는 전혀 반대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잔치는 죽음이 아닌, 생명의 잔치다.

 

트리말키오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한 점의 먼지.

저승사자가 우릴 기다린다, 그러니 즐길 수 있을 때 먹고 죽자고.

 

한편,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죽기 전날, 최후의 만찬을 준비했다. 

그 만찬의 메뉴는 굉장히 소박한 빵과 포도주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빵과 포도주를 같이 먹으며 이것이 나의 몸이고, 나의 피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죄사함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위해 흘리는 나의 피라고 말한다.

곧 언약의 피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연설은 생명의 연설이다. 죄의 삯은 사망(로마서 6장 23절)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말한다. 

이 피는 죄사함을 위해, 흘리는 피라고. 따라서 이것은 생명의 피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를 '생명의 빵'(생명의 떡)이라고 (요한복음 6장 35절) 언급한다.

이것은 은혜이다. 왜냐하면, 한 점의 먼지와도 같이, 죽음만을 기다리던 우리의 영혼이, 생명을 만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