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절을 읽다가 굉장히 마음 한켠에 들어온 구절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 우리 목숨을 내놓는 것이 마땅합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
총 3문장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구절이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계속해서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지는 구절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큰 궁금증은 두번째 문장의 내용이었다. 첫째 문장이야 교회에서 너무나도 많이 들었던 말이라, 별 감흥이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릴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두번째 문장은 달랐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됐습니다'. 이 말은 기원전에 살던 사람들은 사랑을 몰랐단 말이다!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것이지? 기원전 수천년의 시간동안에도 사람들은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갑자기 사랑을 알게 되었다니 이게 무슨말이지? 사랑은 갑자기 발견된것인가? 그렇다면 기원전에 살던 수많은 이들... 로마인들, 이집트인들, 그리스인들, 중국인들, 그들은 사랑을 몰랐단 말인가?
회계와 법: 기원전 사람들이 기록한 것들
우리는 이 구절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다. 분명 고대 이집트, 중국, 그리스, 로마... 등등 기원전에 살던 사람들 또한 사랑을 알았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들 또한 서로 이웃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며 지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빠도 자신의 자식과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했을 수도 있다. 서기 0년을 기점으로 사랑을 모르던 이들이 갑자기 사랑을 알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랑을 어떻게 그렇게 무자르듯이 명확하게 나눌 수 있을까. 내가 어제는 사랑을 모르다가, 오늘 갑자기 사랑을 알게 되었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분명 그들 또한 사랑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있다. 그들은 분명 사랑을 알았지만,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현재는 인터넷과 인쇄술의 발달로 인해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된 것은 불과 수백년밖에 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종이가 귀했고, 인쇄술도 없어서 손으로 하나하나 정성들여서 적어야 했다. 시간을 거슬로 더 위로 올라가보면 아예 종이도 없어서 점토판에 글들을 적곤 했다.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도 극소수. 왕과 귀족, 필경사들만이 쓸 수 있었다.
그러니 기록의 양은 지금에 비하면 굉장히 적었다. 따라서 아무거나 기록으로 남길 수 없었다. 그들이 봤을 때 굉장히 가치있다고 여겨지는 것, 내가 시간과 돈을 들여서라도 꼭 필요한 것들만 적은 것이다. 따라서 기원전 수메르의 필경사들은 점토판 위에 회계장부들을 적었다. 왜냐하면 회계장부는 당장의 재산 분배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길게메쉬 서사시, 수메르 신화 등과 같은 멋진 이야기들도 적었지만 그것들은 사실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그들이 적는 것들의 대부분 내용은 A씨가 내야하는 세금이 얼마냐, B가 가진 밭이 몇 평방미터냐... 등등 현실적인 내용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필경사들은 회계사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세겔', '미나', '달란트'라는 무게 측정단위를 만들었다. 이런 것들은 그들이 문명을 이끌어나가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들이었다. 그래서 사실 수메르 점토판의 내용들은 굉장히 재미없다. 그냥 회사 회계장부랑 똑같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현대의 우리가 보기에 너무나도 재미가 없다. 길가메쉬 서사시 등의 흥미진진한 내용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 수천년전 그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것들이었다.
따라서 수메르의 점토판들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실용적인 것들, 당장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것들이 당연히 더 중요하다. 당장 내가 옆집하고 토지 문제로 싸우게 생겼는데, '네 이웃을 용서하라'라는 말은 너무나 허무맹랑한 말로 들릴 것이다. 혹이럴 때엔 사랑, 용서, 관용, 친절... 등과 같은 듣기 좋은 말들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법률들은 이러한 분쟁을 해결해준다. 기원전 2100-2050년 사이에 만들어진 '우르남무 법전'(Ur-Nammu)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법전을 담은 점토판이다.
법전의 내용을 몇가지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사형되어야 한다.
- 다른 이의 눈을 상해하면 은 1/2 미나를 물어야 한다.
- 증인이 위증을 하면 은 15 쉐켈을 지불해야 한다.
- 다른 이의 땅에 홍수를 내면 그는 땅 이쿠 당 3쿠르의 보리를 주어야 한다.
그들은 법을 중요하게 여겼기에 법전을 기록했다. 법은 너무나도 명확하고, 분쟁을 없애준다. 너의 재산과 나의 재산을 분별하고, 깔끔하다. 공정하며, 정의로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을 차질없이 진행하기 위해 수메르의 필경사들은 수많은 회계업무를 담당했다. 그들의 문자 또한 이러한 회계업무를 담당하는데 최적하되도록 발전되어 60진법 등의 '셈하는 법'을 발명하기도 했다. 너무나도 위대한 발명이다. 셈하는 법을 알게 되면서 인류 문명은 발전하고, 그들은 굉장히 많은 것들을 이루어내었다.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이 법을 기록하고, 회계 장부를 적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회 시스템이 굴러갈 수 있었다. 그러니 '법', '회계장부' 등은 중요한 것들이었고, 따라서 점토판 위에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것은 수메르 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고대 문명들이 남긴 기록물들의 내용은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왕의 권위를 높이는 내용(주로 신화), 혹은 그 왕이 만든 법, 혹은 회계 장부들이었다. 정말 힘들게 공부해서 필경사가 되었는데 점토판에 한가로이 낙서나 할 수는 없었다. 거기엔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어야 했다. 그들이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중요한 내용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내용들 가운데 사랑은 포함되지 않았다.
쓰잘데기 없는 낙서
수메르의 회계장부는 현대인들이 보기에 재미없다. 하지만 그당시에는 굉장히 중요하고 실용적이었다. 하지만 사랑? 그것은 밥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분쟁을 해결해주지도 못한다. 사랑은 토지 증여에 대해 누가 얼만큼 가져가야하는지에 대한 분쟁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사랑은 다른 이의 눈을 상해하면 얼만큼의 돈으로 배상해야하는지 명확히 하지 못한다. 다른 이의 이를 부러트리거나 난투중에 곤봉으로 팔을 상하게 하면 어떻게 배상해야하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한마디로 사랑은 쓸데 없다. 사랑이 수메르 문명과 같은 문명을 만들었나? 아니다.
그러니 필경사들은 그들의 점토판에 사랑을 기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끄적이는 낙서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바울도 명확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사랑을 이야기한다. 고린도전서에는 교회의 성도들이 분쟁이 벌어졌을 때, 법관을 찾지 말라는 바울의 말이 나온다.
여러분이 서로 소송을 한다는 것은 여러분이 벌써 실패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왜 차라리 억울한 일을 당해 주지 못합니까?
왜 차라리 속아 주지 못합니까?
(고전 6장 7절)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사랑을 말하고 있다. 그 아깝고 비싼 양피지를 소비해가며, 몇달동안 목숨걸고 배달한 편지의 내용에 정말 어이없는 내용이 적혀있다. 지금 내가 저 웬수같은 사람때문에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는데, 그토록 기다리던 편지에는 '바깥 사람을 재판관으로 세우지 마라'(고전 6장 4절), '차라리 속아주어라' 등과 같은 이상한 이야기나 적혀있는 것이다. 이것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차라리, 앞서 언급한 우르남무 법전의 내용이라면, 명확했을 것이다. 하지만 알면서도 속아주라니. 정말 어이가 없고 기가 찰 노릇이다.
사랑은 아무런 분쟁을 해결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수메르의 필경사와 달리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 '사랑'을 언급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아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을 것이다. 나의 분쟁 하나 해결해주지 못하는데, 왜 사랑을 택해야 하냐며 엄청 화를 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사랑'을 중요하게 여겼다. 수메르의 필경사와 달랐다.
목숨을 건 편지배달
신약으로 넘어오며 사도들은 자신들의 양피지에 '사랑'을 적기 시작했다. 그들은 값비싼 양피지를 소비해가며 회계장부나 법이 아닌 사랑을 적기 시작한 것이다. 왜 그럴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앞서 말한 요한일서 3장 16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사람들도 사랑을 알고 있긴 했다. 하지만 사랑을 중요하다고 여기진 않았다. 왜냐하면 사랑은 전혀 실용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 예루살람에서 한 초라한 사나이가 죽은 이후로, 그들은 온전한 사랑을 알게 되었다. 온전한 사랑을 알게 되자, 그들은 사랑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사랑은 실용적이지도 않고,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값비싼 양피지를 소비해가며 여러 교회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바울이 쓴 편지는 수많은 전달자들에 의해 각 교회로 전달되었다. 그 서신들은 심지어 바울이 설령 감옥에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에서 2년간 1차 투옥되었을 때 쓰여진 서신이라고 한다. 그 편지들이 바울의 손을 떠나서 각각의 교회 성도들에게 전달되기까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처자해서 성공적으로 전달되었고 2000년 후 우리도 그 서신들을 볼 수 있게된 것이다. 그 과정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숨을 건 희생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전달하고 싶었던 내용은, 그 역경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평범했다. '서로 사랑하라, 사랑은 오래참고, 친절하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소망하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딘다...' 어린왕자로 유명한 생택쥐페리의 소설, '야간비행'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3만 통의 편지들 모두 안전하게 폭풍우를 헤치고 나온 것이다. 회사에서는 늘 ‘우편물은 귀중한 거다, 우편물은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이다’ 말해왔다. 3만명의 연인들을 살아가게 해주는 게 바로 우편물이었던 것이다… 연인들이여, 조금만 기다려라, 저녁놀이 불타는 가운데, 우리가 그대들에게 다다를 것이다.
(생택쥐페리 '야간비행' 중)
생택쥐페리의 소설, 야간비행은 목숨을 걸고 편지들을 항공우편으로 배송하는 임무를 띈 우편비행 조종사들의 야간 임무를 그리고 있다. 그들은 항로가 어긋나서, 태풍을 만나, 등등의 이유로 추락해서 죽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목숨걸고 배달하는 그 편지는 도대체 어떤 내용인가? 분명 그정도의 가치를 지녀야할 것이다. 그당시에는 편지를 보내는 방식이 2가지였다. 배를 이용해 보내는 방법은 값이 저렴한 대신, 몇달씩 걸리곤 했다. 한편 항공비행편은 값이 비싼 대신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니 값을 많이 지불하고서라도 빠르게 도착해야만 하는 편지들이 그 우편비행기에 실려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편지들에는 세금고지서, 회계장부들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지 않았다. 생택쥐페리는 그 편지들을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 폭풍우를 헤치고 나온 그 편지들이 3만명의 연인들을 살아가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항공우편 배송은 목숨을 걸고 하는 사명이 된 것이다. 감동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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