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종교의 자유

이렁비니 2024. 4. 11. 10:28

현재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종교의 자유'란 굉장히 당연한 권리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타인에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는 행위는 구시대적인 행동처럼 비취지기도 한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며 기독교를 강요하는 보수 기독교들의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근간에는 '자유주의' 사상이 깔려있다.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각자 믿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믿자, 이 생각이 자유주의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의 가장 기본 바탕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종교의 자유는 언제 생겨났는가?

사실, '종교의 자유'라는 권리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었다. 지금 현재에 와서는 이 권리가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중세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종교의 자유는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국가가 믿는 종교를 믿어야했다. 다른 종교를 믿는다는 것?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618년부터 1648년까지 30년동안 벌어진 '30년 전쟁'은 구교(가톨릭)와 신교(개신교)간에 싸웠던 전쟁이었다. 그리고 이 전쟁을 종식시킨 조약이 '베스트팔렌 조약'인데, 이를 통해 가톨릭은 여태껏 인정하지 않았던 개신교를 인정하고 동등한 위치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는 엄청난 변화였는데, 드디어 '종교적 자유'가 인정된 것이다. 이제는 당신이 개신교를 믿든, 가톨릭을 믿든, 크게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베스트팔렌 조약은 우리가 현재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종교적 자유'의 첫 출발점이 된 셈이다.

1648년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 이 조약을 통해서 국가를 초월하는 국제법이 등장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마 30년동안이나 치고받고 싸우는 것에 사람들이 지쳐서 서로 각자의 종교를 인정하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듯한 생각이다. 30년이면 굉장히 긴 시간이다. 그 기나긴 시간동안 계속 싸워왔으면 분명 다들 지쳤을 것이다. 지쳐서 속 편하게, '그래, 우리 각자의 종교를 인정하자. 너가 구교를 믿던, 신교를 믿던 상관하지 않을께.'라는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끔찍하게도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주제: 종교의 자유

이슬람에도 비슷한 교리적 분쟁이 존재한다. 이슬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슬람이 그냥 하나의 종교라고 생각하지만, 이슬람 내부에서도 다양한 분파로 나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분파가 수니파 시아파이다. 이 둘의 차이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적합한 계승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수니파는 아부 바크르 아스시디크를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보고 있으며, 시아파는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다. 이 둘, 수니파와 시아파가 갈라진 시기는 서기 7세기 경으로, 이슬람교가 탄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리고 이 둘간의 갈등은 약 1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봉합되고 있지 않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시아파 국가는 이란이고, 수니파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이다. 현재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이가 그닥 좋지 못하다. 이란과 사우디, 둘다 중동의 패권국가이므로 이 둘간의 종교적 차이에 따른 분쟁은 중동 전체에 정치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을 크게 나누면, 시아파와 수니파로 양분할 수 있다.(출처: 주간동아)

이 둘의 분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하다. 서로는 서로를 무슬림 취급을 아예 하지 않고 있다.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수니파 이슬람인 IS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기독교인은 종교세를 내면 살려주되, 시아파는 그냥 죽여라'라고 설교할 정도이다. 이슬람교가 아닌 우리가 보기에는 둘다 거기서 거기처럼 보이지만, 이슬람교도들 입장에서 서로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상대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도대체 왜 한쪽에서는 '종교의 자유'라는 합의를 30년만에 찾아내었지만, 다른 한쪽은 13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합의하지 못한 것일까? 아마 종교문제 이외에도 다양한 정치적 이슈 등등이 섞여서 쉽사리 합의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30년 전쟁도 마찬가지였다. 그당시 유럽 국가들 또한 이슬람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문제 외에 다양한 영토분쟁, 정치 문제 등 복잡한 문제들이 섞여있었다. 그런데 유럽의 사례는 합의를 성공시켰다. 도대체 어떻게?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공통된 전제

도대체 왜 한쪽은 1300년이 넘게 싸우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빠르게 30년만에 합의할 수 있었을까? (물론 30년도 길다. 하지만 1300년에 비하면... 굉장히 짧다) 나는 그 이유가 기독교가 말하는 '평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신교든, 카톨릭이든, 혹은 칼뱅파이든, 루터파이든그 모든 기독교 교파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는 점이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한다는 것은 내가 주장하는 것이 틀렸을 있구나, 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교만하지 않고 겸손히, 내가 옳지 않을 수도 있구나, 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이것을모든 인간은 앞에서 죄인이다라는 교리를 통해서 다들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낫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아래 있다 우리가 이미 선언했습니다.
(로마서 3장 9절)

 

사실 교리 차이로 인해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사실 초창기 교회, 사도행전에도 이러한 분쟁은 등장한다.

이당시 가장 문제는 과연 복음을 유대인들에게만 전해야하는가? 혹은 이방인에게도 전해도 되는가? 였다. 이것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와 바울은 엄청 다투었고,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러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사도행전 15장은 예루살렘 공의회 과정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다. 

유대에서 몇몇 사람들이 안디옥으로 내려가 형제들을 가르쳤는데모세가 가르친 관례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는다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말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과 적지 않은 충돌과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세워 몇몇 신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보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1-2절)

 

이방인에 대한 선교를 해도 되는가, 하면 안되는가, 라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디옥 교회의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로 가서 야고보와 베드로를 만났다. 현재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둘다 거기서 거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둘의 의견차는 생각 이상으로 컸다.


안디옥 교회 예루살렘 교회
교회의 위치 터키 남부 안티오크시.
여기엔 유대인 말고도 굉장히
많은 이방인들이 살고 있었음.
이스라엘.
이스라엘엔 성전이 존재하는 만큼,
유대교의 전통이 굉장히 강하게 남아있는 도시.
주요 신도들 그리스파 유대인 히브리파 유대인
성향 진보적 성향 보수적 성향
충돌 지점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도 선교 가능. 할례받은 유대인들에게만 선교 가능.
대표자 바울, 바나바 야고보, 베드로

 

그들은 유대인이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이방인에게 선교를 허용한다는 것은 그들 입장에선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결정이었다. 유대교는 유대인들에게 단순한 종교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삶 자체였다. 그들은 유대교 율법에 따라 밥을 먹고, 휴식을 하고, 삶의 모든 순간에 유대교 율법이 함께 했다. 현재 우리가 접하는 엄격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만큼이나 그들은 엄격했다. 따라서 어쩌면 이때 안디옥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는 현재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처럼 아에 갈라져 200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갈등을 일으켰을수도 있다. 그런 그들이 도대체 어떻게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었을까? 사도행전 15장에는 오랜 시간 토론한 끝에 내놓은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론을 적어놓았다.

세계 최초의 교회인 안디옥 교회의 모습. 좌측에서 노란색 박스로 표시한 곳이 안디옥(현재 터키 남부, 시리아 접경 지대)이고, 그 아래에 예루살렘의 위치가 보인다.

오랜 시간 동안 토론한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도 알다시피 얼마 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운데서 나를 선택해
이방 사람들도 내 입술을 통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셨습니다.
그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방 사람들에게도
성령을 주셔서 그들을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믿음으로 깨끗하게 하셔서 우리와 그들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째서 우리 조상이나 우리가 질 수 없었던 무거운 짐을 이방 신자들에게 지워서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하십니까?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믿습니다.
(사도행전 15장 7 - 11절)

 

그들이 어떤 상황이었고, 어떤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었는지를 안다면 베드로의 이 말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 말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두려웠을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스데반과 그 무리들이 예수를 믿고 이를 증언하다가 돌맞아 죽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제 막 뿌리를 잡기 시작한 예루살렘 교회가 이 선택으로 인해 탄압받고 해체되지 않을까도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이방인 선교를 허용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또다른 지도자인 야고보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방 사람들을 괴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 15장 19절)

 

종교 교리에 대한 합의점을 도출해내기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근대 이전, 종교는 정치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교리에 대한 합의를 찾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이것이 잘못되어버린다면 수니파-시아파 분쟁처럼 1300년이 넘도록 싸울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예루살렘 공의회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만약 이 예루살렘 공의회가 실패하고 그 두 교회가 서로 갈라섰으면 현재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안디옥 교회든, 예루살렘 교회든, 그들은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한다는 공통된 목표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종교의 자유'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예루살렘 공의회와 같다고 본다. 30년이라는 지루하고 긴 전쟁을 치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신교든, 구교든, 그들은 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한 구원'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서로간을 존중하고, 신앙에 대한 자유를 보전한 것이다.

이슬람의 시아파, 수니파에게도 무함마드 선지자라는 동일한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둘이 갈라진 것은 무함마드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아파와 수니파는 무함마드를 중심으로 화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화해를 할 기회가 무려 1300년이 넘게 있었으나, 그 시간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화해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 왜 무함마드의 은혜로는 불가능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는 가능했을까? 

 

지리적, 혹은 민족적 특징?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알기 위해선 종교의 특징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갈등은 근본적으로 종교 교리 차이에 따른 갈등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예 종교가 없었으면 이러한 갈등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공산주의자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결국, 공산주의 혁명은 변질되고, 스탈린이라는 독재자가 탄생했다. 또한 소련이 공중해체되며 공산주의는 실패한 혁명이 되었다.

 

나는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화합과 평등, 그리고 사랑이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발전하면서 많은 분열을 겪었다. 때로는 30년 전쟁처럼 내부적으로 분열해 싸우기도 하고, 제국주의 시대엔 타 종교들을 핍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화합으로 나아갔다. 기독교의 가장 큰 교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는 만인 평등 사상으로 발전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62년, 3년에 걸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신교, 구교간의 종교적 자유 외에도 '모든 이들의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다. 이제 당신이 불교를 믿든, 이슬람을 믿든, 가톨릭을 믿든... 종교의 자유가 전세계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제는 몇몇 국가들을 제외하고 웬만한 국가들 안에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 그리고 이 권리는 절대로 당연한 것이 아니다. 굉장히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이들이 사랑으로 이해하고, 화합하며 이루어낸 결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