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물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린지 2000년이 흐르는 시간동안 십자가는 수많은 그림, 조각, 음악 등 예술 장르에서 항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항상 십자가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십자가의 조롱에 대한 역사는 십자가의 역사만큼이나 굉장히 오래되었다. 역설적으로 나에겐 성스럽게 그려지는 십자가의 예수보다는 조롱의 대상이 된 십자가의 예수가 더 큰 묵상이 된다. 왜냐하면 그럴수록 그 모든 조롱을 사랑으로 묵묵히 인내한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십자가 그림
2000년동안 굉장히 많은 십자가들이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져왔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그림들 중, 가장 오래된 십자가를 그린 그림은 무엇일까? 어쩌면 비잔틴 제국의 화려한 모자이크로 뒤덮힌 그림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십자가 그림은 그보다 훨씬 더 초라한 모습이다.
위의 그림은 약 서기 200년경, 로마의 팔라타인 언덕의 장교 막사에 그려진 로마 시대의 낙서이다. 낙서에는 당나귀 머리를 한 한 사내가 십자가 형틀에 몸이 묶여있고, 그 옆에 한 남자가 그 사내를 경배하는 듯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아래에 적힌 그리스어는, '알렉사메노가 그의 신을 숭배하다'라고 적혀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십자가 그림엔 그 어떠한 절대자의 영광도, 신적 권위의 모습도 보여지지 않는다. 당나귀는 바보를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십자가에 매달린 사내는 당나귀 머리를 한 사내로,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같은 시기에 로마 제국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또한 로마 건국 신화인 '아이네이스'에서 신의 아들로 여겨진다.
그가 올 것이라고 너도 가끔 들은 적이 있는 바로 그 사람으로
신의 아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이다.
(로마 건국 신화, '아이네이스' 중)
신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던 두명의 사내. 한명은 세계를 다스리던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로서 이 세상의 모든 권세를 누렸다. 그를 기리는 수많은 조각상들이 로마에 만들어지고 모든 영광이 그를 향한다. 이와는 굉장히 대조적인 신의 아들이라 불리던 사람이 한명 더 있었다. 그는 그저 초라하게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갔다. 그는 살아 생전에도, 죽은 이후에도 놀림받고 조롱당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사람의 아들)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마태복음 8장 20절)
그는 살아 생전에는 자신의 머리 하나 편히 둘 곳이 없었고, 죽은지 100년이 지난 후에도 당나귀 머리를 한 멍청이, 바보라고 놀림받았다.
너무나도 대조적인 두 명의 '신의 아들'. 한명은 현세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얻었고, 다른 한명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놀림거리가 되었다.
이성을 중시하던 그리스,로마인들이 보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굉장히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은 그저 십자가에 비참하게 매달려 죽은 볼품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믿는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았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수많은 이들의 당연히 조롱과 놀림감의 대상이 되었다. 서기 2세기 경, 법학자이자 철학자인 켈수스(Celsus)는 그리스도인들을 이렇게 조롱했다.
기독교인들은 잘 배우고 현명하며 이해력 있는 사람들은 피하고, 어리석고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들만 노린다.
기독교는 바보같고 불명예스럽고 어리석은 사람들, 노예들, 여인들, 어린아이들이나 속아 넘어가는 종교다.
신이 인간으로서 이 땅에 내려왔는데 십자가에 달려 비참하게 조롱받으며 죽었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켈수스는 [진리]라는 그의 저서를 통해 기독교를 총체적으로, 논리적으로 비판한다. 켈수스 외에도 사람들은 기독교를 '사람고기를 먹고 사람 피를 마신다', '불법적인 성관계를 한다'라며 비난했다.
초기 기독교는 주로 노예와 가난한 이들에게서 환영받았다. 이는 교회가 인종과 계급을 차별없이 환영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그들에게 더 큰 울림은 주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마태복음 5장에 적힌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 말씀은 부자들보다 가난한 이들에게 더 큰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3-4절)
이렇듯 초기 기독교인들은 주로 못배운 노예나 가난한 이들이었기에 그들은 기독교를 하나의 '교리'로 발전시킬 수 없었다. 아마도 그런 점들이 논리적 반박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켈수스와 같이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이들이 더 많은 공격을 할 구실을 제공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점차 그 세력이 커져갔다. 결국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AD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며 박해는 멈추었고, AD 380년에는 테오도시우스1세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한다. 이로써 로마는 기독교 제국이 된다.
미스터리
정말 수수께끼와도 같은 일이다. AD 200년경만 하더라도 기독교는 위 그림과 같이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당나귀 머리를 한 십자가에 달린 사내를 신으로 믿는, 바보들이나 믿는 종교라고 놀림감이 되었다. 이성을 중요시하는 그리스,로마인들에게 기독교는 특히나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기독교는 황제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종교이기도 했다. 아리스티데스는 그당시 황제였던 트리야누스에게까지 기독교 신앙을 합리적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또한 순교자 유스티노스는 AD 140-150년 경 로마에서 기독교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불과 100년 상간에 로마 황제와 의원들에게도 기독교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조롱받고, 바보들이나 믿는다는 종교가 한편으로는 황제에게까지 설파되었다는 점은 굉장히 신기한 일이다. 결국 약 100년이 지난 후, 기독교는 정식 종교로 인정받고, 200년이 채 안되어 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제국의 국교가 되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재산도 잃어버리고 어두운 곳에 살면서 육체적 고통이나 고문을 받아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AD 300년, 갈레리우스 황제는 엄청난 박해를 가했다. 모든 군인들에게 제사에 참여하라고 명했고, 이에 따르지 않는 군인은 처형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성장했다. 도대체 왜 그들은 재산도 잃어버리고, 육체적 고통이나 고문을 받고, 그 끝에 비참한 죽음이 있더라고 그들의 신앙을 버리지 않는 것일까?
이해되지 않는 지점이 또 있다. 신이면서 인간이라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사실은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로마의 국교화 이후에도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 수많은 교리적 논쟁이 펼쳐졌다. 그과정에서 교회는 이단 논쟁에 빠지기도 하고 분열되기도 했다. 예수는 누구인가? 아무도 그의 얼굴을 모른다. 성경은 그의 생김새를 기록하지 않았다. 그저 추측할 뿐이다. '예수'라는 이름 또한 그당시 이스라엘 지방에서 너무나도 흔하게 사용되던 이름이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철수나 영희와 같은 이름이었다.
얼굴도 모르고 무명의 이스라엘 땅에서 살다가 죽어버린 한 사내가 이렇게나 세계 역사를 뒤흔들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도대체 왜 그는 당나귀 머리를 한 조롱받던 사내에서 신의 아들로 추앙받게 되었을까?
2000년 동안이나 수많은 이들이 그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여전히 예수라고 하는 인물은 파면 팔수록 수수께끼에 쌓인 인물이다. 그가 만약 저 낙서처럼 당나귀 머리를 한 바보라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 또한 의미없이 죽어간 한 무명의 사내를 매주 일요일마다 기리는 바보들이다. 수많은 순교자들 또한 아무런 의미없이 죽어간 것이다. 왜? 라고 하는 의문이 저절로 든다.
온두라스 출신의 아버지와 쿠바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안드레 세라노(Andres Serrano, 1950~)는 자신의 오줌이 든 유리병 안에 플라스틱 십자가를 하나 집어넣고 '오줌 속의 그리스도'라는 사진 작품을 촬영했다. 수많은 이들이 '신성모독적인' 작품이다, 라고 반발했다. 작가는 스스로를 가톨릭교인이라고 말하고, 이 작품은 신성모독적인 작품이 아니고, 종교를 비난하려는 의도도 없다고 말했다. 사람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이지 잘 모르겠다. 나는 맨 처음에 이 작품을 보았을 때엔 기분 나쁘고 굉장히 신성모독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2000년 전에도 십자가에서 조롱받았다. 당나귀 머리를 한 바보라고 놀림받기도 했다. 약 2000년 후에는 오줌통에 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침묵한다. '신성모독이다', '표현의 자유다' 등등, 그 모든 논란과 조롱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그는 잠잠히 십자가에 달려있다. 그는 그저 침묵을 지킬 뿐,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는다.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술을 지원하겠다는 교회의 약속을 선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스티나 예배당에 예술가들을 초청했다. 그중에는 저 '오줌 속의 그리스도' 사진을 찍은 '안드레 세라노'도 있었고 교황은 그를 축복하고 엄지 손가락을 들어 승인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의 영광은 로마의 수많은 조각상들과 대서사시 '아이네이스'에 있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는 수많은 수모를 겪었지만, 사람들은 그의 수모 안에서 십자가의 사랑을 발견한다. 도대체 왜? 오줌통 속에 빠져서도 그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빛난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아무도 할 수 없겠지만,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또한, 이사야서 53장 3절도 떠오른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버림을 받았을 뿐 아니라 고통을 겪었고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서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를 당했으니 우리마저도 그를 무시해 버렸다.
(이사야 53장 3절)
아무리 멸시받고 무시를 당해도, 여전히 그 자리에 묵묵히 존재하는 예수 그리스도. 20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그 침묵을 지키며 그 멸시와 조롱의 자리에 존재하신다는 것은 현재까지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위로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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