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은 기독교에선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죽은자가 부활한것은 믿는것이 불가능하다. 어쩌면 이것은 전인류적인 사기극이 아닐까. 사실 이러한 의문은 성경시대에도 있었다.
62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63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마27:62-64]
이 구절을 보면 그당시에도 죽은뒤 사흘후에 부활한다는 예수의 생전가르침을 실현시키기 위해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할까봐 바리새인들이 걱정했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만약 부활이 거짓말이고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이 꾸며낸것이라면 굳이 이런 구절을 성경에 적는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조금더 양보해서 예수의 제자들이 어떠한 음모를 꾸며 그의 시체를 도둑질했다고 가정하자.
이러한 생각은 그당시에도 있었다.
11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14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마28:11-15]
만약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한것이라면 그들이 굳이 자신들에게 불리할 수 있는 이 구절을 적었을까? 이 구절을 보면 부활이 사실 없었다는 반박은 성서시대에도 있었다는것을 알수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체를 훔치든, 혹은 훔치지 못했지만, 거짓으로 그의 부활을 꾸며내어 세력을 키우려고했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그렇게 가정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행동에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먼저 시체를 훔치지 못했을경우, 이후 이어지는 예수의 제자들의 말에 바리새인들은 너무나도 쉽게 반박할수있다. 바로, 대중들 앞에 예수의 시체를 보여주기만하면 그들은 돌아설것이다. 눈에 보이는 증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증언보다 사람의 마음을 더 강하게 흔든다.
그렇다면 결국 이렇게밖에 설명할수없다.
-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은 죽은뒤 사흘후에 부활할 것이라는 예수의 생전 가르침을 알고있었다.
- 그들은 이를 가지고 예수의 제자들이 그의 시체를 도둑질해 부활했다고 거짓으로 떠들고다닐까 걱정했다.
- 그래서 그들은 경비병을 고용해 문을 봉하고, 지키도록했다.
- 무언가 일이 벌어졌다. x라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건 불명확한 사건이다.
- 그들이 빈무덤을 발견했다.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은 바리새인들도 확인한 사실이다. 그들은 이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경비병들로 하여금 돈을 주고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했다고 소문을 퍼트리라 지시한다.
이 X라는 사건. 이것은 정말 미스터리한 사건이다. 무언가 벌어졌다는것은 부인할수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수 시체의 실종과 빈 무덤이다.
조금더 양보해서, 이 모든 일들이 다 지어낸 이야기라고 가정하자. 십자가부터 부활까지 예수를 추종한 제자들이 지어낸 거짓말. 하지만 이렇게되면 사도행전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행적이 말이 안된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이 소식을 전하는데, 스스로 뻔히 거짓임을 알면서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 나의 죽음이 아무런 의미없는 죽음이 될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죽음을 선택할수 있을까? 이것또한 불가능하다고 본다.
만약 예수가 부활한것을 본것이 단체 환각이라면? 그래서 그들이 예수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나머지 환상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면?
그렇다면 두가지가 설명이 안된다.
-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시체라는 명확한 증거물을 가지고 그들을 반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하지 않았다. 왜?
- 사도 바울이나 스데반의 경우 예수를 생전에 보지 못한자들이다. 그들은 생전의 예수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그들은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순교했는가?
오컴의 면도날
오컴의 면도날은, 어떤 A라는 사건을 가장 빠르고 명확하게 설명해줄수 있는 근거가 참이라는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이 x라는 사건을 설명하기위해 가장 손쉽게 설명할수 있는 방법은 예수의 부활이다. 이것을 부정한다면 항상 어떠한 논리적 모순이 생긴다.
성경은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 되는 이 부분, x에 관해 그 어떠한 증거도 남겨두지 않았다. 단지 증언들과 증인만 남겨두었다. 왜 그러셨는지 잘 모르겠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전혀 알수 없다. 죽은 자가 부활했다는 사실은 믿는것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모순이다. 패러독스. 죽음과 생명. 이것은 절대 같이 양립될수없는 두 요소이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믿는다. 믿을수없는 것을 믿기에 그들은 논리적으로 설명할수가 없다. 그저, 예수그리스도가 부활했다고 증언할 수 밖에 없다.
성경은 이러한 모순들로 가득하다. 죄인과 하나님은 양립할수없다. 그러나 그둘이 언약을 맺는다. 사랑받지 못할자가 사랑을 받는다. 구원받을 수없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 하나같이 다 믿기 불가능한것이다. 하지만 믿어진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다는것이 기독교의 신앙이다.
그래서 믿는다는것은 기적인것이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정교하게 설명한다 할지라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남겨진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존재하는것이다. 믿을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이것만큼은 선택의 문제로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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