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도'는 2015년 개봉한,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사건을 다룬 사극 영화이다. 왜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였는지에 대한 여러가지 설들이 있다. 이 영화에선 아버지 영조의 심리적 문제를 부각시켰지만, 이번 포스팅에선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점을 다뤄보고자 한다.
조선의 통치 시스템 - '유교'
조선은 철저한 '유교'에 기반한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국가이다. 정확히는 성리학이긴 하지만, 이번 포스팅에선 편의를 위해 유교라고 표기하겠다. 어차피 성리학 또한 유교라는 뿌리에서 나온 사상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는 통치하기 위한 어떠한 '사상'혹은 '종교'가 존재한다. 사실, 유교는 태생부터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종교이다. 공자가 유교를 창시한 당시, 중국은 춘추-전국 시대로, 굉장한 혼란기를 겪었다. 이러한 혼란기는 '주나라'를 중심으로 한 봉건제 체제가 흔들리며 시작되었는데, 공자는 이 기존의 봉건 질서를 회복해야지만 태평성대가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다. 공자 또한 이러한 자신의 사상을 직접 실현하고자, 수많은 제후국을 찾아다니며 벼슬을 얻고자 했으나 번번이 좌절되었다. 13년간의 유랑생활 후, 그는 출판과 교육에 힘을 썼다. 따라서 유교는 출발점이 애초에 '종교'라기 보다는 하나의 '정치 철학'으로 시작한 셈이다.
위 지도만 보면 알수 있듯이,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는 혼돈의 시기였다. 따라서 공자는 '질서'를 엄청 강조했다. '질서'야말로 이 혼란한 시기를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셈이다. 그리고 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선 개개인이 사회 시스템 속 각자의 자리 안에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잘 해낼 때에 질서가 유지된다고 보았다.
君君臣臣 父父子子
(군군신신 부부자자)
[논어(論語) - 안연 편 중]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 父父子子), 이 말이 공자의 이러한 생각을 굉장히 잘 드러내고 있다. 임금은 임금의 자리에서, 신하는 신하의 자리에서,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에서, 아들은 아들의 자리에서 각자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해낸다면 세상은 평화로워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공자의 이 말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하나 숨어있다.
만약 한 '개인'의 존재 자체가 사회 구조에 해가 된다면?
임금은 임금의 자리에서, 신하는 신하의 자리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통치를 한다면 나라는 굉장히 안정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실제로 '조선'이라는 국가 시스템은 이러한 유교적 봉건 시스템 아래에서 500년동안이나 무사히 돌아갔다. 이렇게 한 왕조가 500년을 지속하는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다. 이런 점을 보자면 공자의 주장은 옳다.
하지만, 국가라는 이 거대한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굴리기 위해서, 각 개개인은 이 국가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속품으로 쓰이게 된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어떠한 인물이 태어났는데, 해당 인물의 출신 자체가 부속품으로 쓰이기에 불량품이라면? 그렇다면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해당 개인은 죽어야만 한다. 이것은 잔인한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오류를 잡아내는 것 뿐이다.
내가 심지어 왕이라 할지라도, 국가의 부속품이라는 사실은 마찬가지이다. 영조(송강호)는 사도세자(유아인)을 데리고 종묘를 찾는다. 여기서 이들이 나눈 대화를 살펴보면, 왕실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비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조: 사가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자애로 기른다. 하지만 왕가에서는 자식을 원수처럼 여긴다 했다. 너 왜 그런지 아니?
사도세자: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본심이야 어찌 다르겠습니까?
영조: 다르다. 나는 여기 종묘에 올 때마다 조상들의 피 울음소리를 듣는다.
여긴 46년간 임금을 하신 내 아버님 숙종 대왕을 모신 곳이다. 이 어른은 부인에게 사약을 내린 임금이시다.
이분은 내 형님 경종 대왕이시다. 사람들은 내가 형님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고 한다. 넌 어찌 생각하느냐?
사도세자: 자기 당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말인들 못 지어내겠습니까? 너무 괘념치 마소서.
영조: 이곳에는 형제와 조카까지 죽이고 종사를 지킨 임금들도 계시다. 왕가에서 자식을 원수처럼 기른다는 뜻을 이제 알겠느냐?
조선이라는 국가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 왕들의 개인사는 비극 그 자체였다. 영조가 말한대로, 왕가에서는 자식을 자식이 아닌, 원수처럼 길러야했던 것이다. 숙종은 부인에게 사약을 내리고, 영조도 아들을 뒤주에 갇혀 죽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왕가는 국가를 직접적으로 통치하는 가장 중요한 부품인만큼, 그 어떠한 오류도 있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영조에 보기에 사도세자는 오류가 있는 아들이었다. 조선이라는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는 불량품이었던 셈이다. 만약, 사도세자가 어떻게 노력을 해서 이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면 이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겠지만, 이 오류는 애초에 바로잡는 것이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때로는 '태생' 자체가 오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태생은 바꿀 수 없다. 그러니 오류는 바로잡을 수 없고, 이를 바로잡는 유일한 방법은 오류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사도세자: 자식을 꼭 역적으로까지 만들어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영조: 너는 존재 자체가 역모야.
빈궁과 옹주에게까지 칼을 들이대? 네가 백정이냐?
사도세자: 그 모든 것은 다 저의 울화 때문입니다.
영조: 울화? 울화! 차라리 미쳐서 발광을 해라, 이 자식아!
꼴도 보기 싫다! 금천교로 가서 대죄해!
결국,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해선 안될 말까지 하게 된다. "너는 존재 자체가 역모야"라는 이 말은, 아버지가 아들의 태생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말이다. 결국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은 영조의 심리적 요인 이전에, 모든 개개인은 국가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 존재하는 부속품이라는 사실 때문인 것이다. 공자의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 父父子子)', 이 말이 이것이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을 만들었다.
임금에겐 조선의 유교적 봉건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이 질서가 무너진다면...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대혼란기가 찾아오기 마련이기 떄문이다. 춘추전국시대의 대혼란기에 비하면, 개인 가족사의 비극은 너무나도 작은 슬픔이다. 그래서 왕가의 가족사는 비극적이다. 때로 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선, 한 개인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일한 해결책은?
영조의 말을 듣고 분노한 사도세자는 진짜 역모를 저지르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칼을 빼들고, 자신을 따르는 무사들과 함께 영조를 찾아간다. 하지만, 정작 찾아간 사도세자는 훗날 정조가 되는 자기 아들의 대화를 듣고, 영조를 죽이려던 마음을 고쳐먹는다.
혜경궁 홍씨도 사도세자의 폭주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날린다. 하지만 사도세자는 멈출 생각이 없다. 하지만 어린 정조와 영조의 대화가, 그를 멈춘다. 도대체 어린 정조의 어떤 말이, 폭주기관차와 같은 사도세자의 폭주를 막을 수 있었을까?
영조: 한데 지난번 네 아비가 영빈의 회갑연을 치러 줬다지?
어린 정조: 그러하옵니다.
영조: 그때 너도 사배를 올렸다지?
어린 정조: 그러하옵니다.
영조: 네 할미는 일개 후궁인데, 어찌하여 왕과 왕비에게만 올리는 사배를 올렸느냐?
그건 예법에 어긋나는 일 아니더냐? 세손은 대답해보라.
어린 정조: 소손은 할바마마가 왕이 아니어도 백 배, 천 배를 올릴 수 있사옵니다.
영조: 어찌하여 그러하냐?
어린 정조: 사람이 있고 예법이 있는 것이지, 어떻게 예법이 있고 사람이 있겠습니까?
공자께서도 예법의 말단을 보지 말고 그 마음을 보라 하였습니다. 그날 소손은 제 아비의 마음을 보았나이다.
어린 정조의 말, '그날 소손은 제 아비의 마음을 보았나이다', 이 말은 예법을 초월한 '효'이다. 이 '효'는 정조가 가진 아비에 대한 사랑이다.
아버지인 영조는 사도세자를 '역모'라는 오류로 보았지만, 정조는 '사랑'을 통해 '사도세자'라는 한 인간을 보았다. 국가 시스템이 있기 이전에 사람이 존재한다. 사람을 먼저 보지 못하고, 형식에 너무 매몰되면 비극이 펼쳐진다.
공자의 한계
자공이 곡삭제에 쓰던 희생양을 더 이상 쓰지 않으려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사야, 너는 그 양을 아까워하지만 나는 그 예를 아까워한다”
[논어(論語)-팔일 편 17장]
곡삭제는 매월 초하루에 각 제후들이 희생양을 바쳐 지낸 제사이다. 노나라는 문공 이후부터 이 곡삭제를 지내지 않아 양이 필요 없게 되었으나, 여전히 양을 바치던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공이 이런 제도를 없애려 하자, 공자는 이를 말렸다. 왜냐하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데 양을 바치는 것마저 없애버린다면 '예'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것이라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가 사라지게 된다면 국가를 유지하는 시스템 또한 무너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형식에 갇혀있으면, 그 본질은 잃어버린채 형식만 강조된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마가복음 2장 27절)
안식일은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긴 날이다. '십계명'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라'라고 적혀있을 정도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들에게 목숨과도 같은 일이었다. 안식일은 단순히 '쉬는 날'의 개념이 아니라, 유대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굉장히 중요한 날이었다. 다양한 궁중 예법들과 제사들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탱했던 것처럼, 안식일과 여러 율법들은 유대 민족이라는 민족을 지탱하는 기반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안식일에 쉬는 것을 지금 일요일날 쉬는 것 정도로 생각하면 안된다. 안식일에 쉬지 않는 것은 그 민족을 지탱하는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법에 위배되는 중죄였다.
하지만, 법이 있기 이전에 사람이 있다. 사람보다 법이 먼저 있게 되면 비극이 벌어진다.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날 이삭을 자르자, 바리새파(율법주의자 유대인)들이 예수께, 저들이 안식일에 해선 안되는 일들을 한다고 고발한다. 그러자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25절: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파 먹을 것이 필요했을 때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 읽어 보지 못했느냐?
26절: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제사장만 먹게 돼 있는 진설병을
다윗이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나눠 주지 않았느냐?”
27절: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28절: 그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저 말이 어린 정조가 말한 말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있고 그 뒤에 예법이 있어야지, 예법이 먼저 있고 사람이 있을 수는 없다. 사람이 먼저 있고 안식일이 있지, 안식일이 있고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공자는 예법을 중요시했다. 하지만 사실 예법이 있기 이전에 사람이 있다. 형식이 있기 이전에 사람이 있는 것이다. 어린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법 이전에, 사도세자라는 한 개인을 순수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공자 | 예수 | |
중요하게 여긴 것 | 형식(예법) | 사람 |
이유 | 형식이 사라지면, 그 본질 또한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모든 형식(율법, 안식일 등)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사람이 먼저이다. |
'예'를 뛰어넘어, '예'를 보완하는 사랑
사도세자는 활을 쏘면서 어린 정조 부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부부란 서로의 실수를 덮어주고, 사소한 예법에 얽매이지 않으며,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끝없이 사랑하는 것이니라
(사도세자의 대사 중)
결국, 사랑은 사소한 예법에 얽메어있지 않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 모든 법칙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후반부,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고,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는 어명을 내린다. 하지만 어린 정조는 이 어명을 무시하고 뒤주에 갇힌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물을 올리려 한다. 중간에 내금위장이 '어명이다'라고 길을 가로막지만 이를 무시하고 정조는 물을 올리려 한다. 왜냐하면 어린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조는 물 한잔도 허락하지 않고, 외가에 가서 처분을 기다리라고 말한다. 할아버지 영조는 '왕가의 법'이라는 율법을 따르기 위해, 조선의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자식을 죽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어린 정조 또한 현재 아무런 힘이 없기에 할아버지 영조의 어명을 결국 따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어린 정조의 비극이다.
어린 정조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
그렇다면 여기서 정조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일단 현재로서는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어린 세자의 자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자라서 왕이 된다면, 그는 이 사건에 대한 몇가지 선택지가 생긴다.
1. 복수를 위해 관련된 자들을 엄벌에 처한다.
가장 첫번째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다. 정조가 왕이 된 후, 그는 폭군이 되어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모든 이들을 죽일 수 있다. 실제로 연산군의 경우, 어머니 폐비 윤씨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피의 숙청을 벌인다. 하지만 이러한 피의 복수는 또다른 피를 부른다. 이 과정에서 백성들은 너무나 큰 고통을 겪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복수를 한다해도, 어린 정조에게 마음의 평화는 없다. 복수에는 끝이 없고,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낳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복수의 고리를 끊어내야만 한다. 따라서 정조는 두번째 선택지를 택해야만 한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택한다.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낳는다. 이 피의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선, 오직 하나, 자신이 그 모든 상처를 짊어지고 사랑으로 용서하는 것 뿐이다. 어린 정조는 마음 깊은 곳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있다. 하지만 정조는 상처입은 치유자이다. 그는 이 상처를 결국 사랑으로 극복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으며
(고린도전서 13장 4-5절)
정조는 오래 참았다. 그러나 복수를 위해 오래 참은 것이 아니다. 그는 사랑으로 오래 참았다. 어린 정조는 성인이 되고 난 후, 어머니를 위한 춤을 춘다. 또한 사랑은 결코 원한을 품지 않는다. 정조는 한 맺힌 원한을 품고 아버지를 죽인 이들에게 복수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참으로 오래 참고, 친절하며, 시기하지 않았고, 무례하지 않았고, 성내지 않았고, 원한을 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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