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사랑과 효율성

이렁비니 2024. 6. 21. 10:29

효율적인 것은 좋은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인것 같다. 실제로 효율성을 추구하면 이익이 극대화되고 이것은 좋은 것이 맞다.
만약에 조금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NGO단체라 할지라도, 효율성은 당연히 추구해야하는 것이다. 유니세프 등과 같은 단체에서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많은 목숨을 기아로부터 살리는 것이 목표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서, 효율적인 것은 '사랑'일까?
더 나아가, 예수님은 효율을 추구하셨을까?
 
성경을 읽다보면 생각보다 예수님은 효율적으로 사역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효율성을 추구한 자는 따로 있었다.
그는 '가룟 유다'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배신자로 유명하지만, 그는 재정을 도맡아 관리하던 사람이기도 하다. 
요한복음 12장에는 값비싼 향유 한 통을 싹 다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부어버린 마리아의 이야기가 나온다. 가룟 유다는 마리아를 다음과 같은 말로 질책한다.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는 도둑이어서 돈자루를 맡아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것을 
쳐내곤 하였기 때문이다.
- 요한복음 12장 5-6절 -

 
성경에는 가룟 유다를 도둑이라고 말하지만, 가룟 유다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넘긴 후에 생겨난 인식이다. 십자가 사건 이전, 가룟 유다는 어쩌면 열두 제자중 가장 신뢰받는 제자였을수도 있다. 그 증거로 예수의 제자들은 그에게 재정관리를 맡겼다. 이는 그가 제자들 사이에서 꽤나 신임을 얻고, 믿을만한 인물로 여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가룟 유다의 저 말은 굉장히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유다의 말은 단순한 시기와 질투심에서 비롯된것이 아니다. 그는 진심으로 마리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향유를 팔아 수백명의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것을 나누어주는것이 더 올바른 선택이 아닌가. 그런데 그녀는 지금 향유를 그냥 버리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런 바보같은 선택을 하는것인가?

마리아가 향유를 낭비한 이유

마리아는 사랑으로 예수께 향유를 부었다. 그녀에겐 현재 같이 있지 않은 가난한 이들보다, 지금 내 눈 앞의 예수 그리스도가 더 중요했다. 이것은 비합리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사랑이다. 가룟 유다의 눈에 비추어본다면 이는 바보같은 짓이고 낭비다. 세상의 윤리적 가치에 비추어 본다 할지라도 이것은 낭비다. 하지만 사랑은 낭비다.
사랑은 버리는 것이고 포기하는 것이다. 향유의 가치는 단순한 300데나리온이 아니다. 그것의 잠재적 가치는 수백의 가난한 이들을 살릴수 있는 것이었다.

Ai의 문제점

Ai가 요즘 계속 화두가 된다. Ai를 쓰면 더 효율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이익을 더 낼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은 효율적이지 않다. Ai로 인한 효율성이 증진되어 더 많은 이들을 돕는다고 하자. 이것은 마치 가룟유다가 향유를 팔아 수많은 이들을 돕는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게하면 당장의 가시적 성과는 명확하다. 반면에 마리아와 같이 사랑한다면 이것은 막대한 손해다. 장기적으로봐도 이것은 손해다. 예수께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비합리적인 행동들을 하신다.

"너희 중 누가 100마리의 양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고 하자. 그러면 99마리의 양을 들판에 두고 그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5장 4절

예수께선 양 1마리를 찾기 위해 99마리의 양을 내버려두었다. 만약 예수께서 사업가였으면 당장에 그 사업은 망했을것이다. Ai를 이용하는 NGO단체의 대표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는 Ai를 통한 인공지능을 통해 최적의 알고리즘과 생산성을 통해 최대한 많은 이들을 도왔을것이다. 그는 사회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칭송받을 수도 있다. Ai를 활용해 개인적 이익을 취한것이 아니라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어떨까??
그는 가룟 유다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졌을수도 있다. 100퍼센트 그렇다는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것이 Ai의 문제점이다.
극도의 효율성은 사랑을 제거한다. 왜냐면 그는 사랑이 아닌 효율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을 택하면 그 모든것을 얻는다. 사랑을 택하면 모든것을 잃는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랑은 결국 승리한다. 그가 승리하는 법은 우리의 이성과 지식으로는 다 깨달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우리의 이성보다 크기에 비효율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또한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을 선택하는 이유는 예수께서 그리 하셨고, 부활을 통해 승리하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