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26

슬픔

인스타에서 해당 사진을 보았다. "하나님 아버지"로 시작되는 그 기도의 편지는, 정작 아무런 내용이 없었다. 그리고 떨어진 눈물 자국들. 그리고 마지막에 "아멘"으로만 끝났다. 백마디의 말보다, 몇방울의 눈물자국이 적힌 빈 기도문이 더 감동이다. 어쩌면 내가 "F"여서 그럴수도 있겠다. 하지만, 궁금할 것이다. 도대체 저 빈 여백에는 어떤 말들이 쓰여지는 기도가 들어왔던 것일까? 우리는 무엇이 쓰여져 있었는지 알 수 없고, 오직 몇 방울의 눈물자국만으로 어슴푸레 짐작할 뿐이다.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위 말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철학적 논제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굉장히 어려워서 Chat-GPT의 도움을 받아, GPT가 설명하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에 대해 설명해본다. 그의 철학은 ..

기독교 2024.08.16

이방인의 잔치과 예수 그리스도의 잔치

가나의 혼인잔치신약성서에는 꽤 자주 식사를 같이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중 굉장히 많은 기적들이 실질적으로 먹거나 마시는 것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최초로 행한 기적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일어난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화가 '파올로 베로네세'가 그린 '가나의 혼인잔치'라는 그림이 있다. 그 유명한 모나리자의 맞은편에 전시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홀대받고 있지만, 이 그림은 세로 6.77m, 가로 9.94m나 되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큰 그림이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 파울로 베로네제(PAOLO VERONESE, 1528-1588)는 베네치아의 산 조르조 마조레 수도원으로부터 수도원을 장식할 그림을 주문받는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에는 총 130여명..

카테고리 없음 2024.08.14

성장과 멈춤

요즘 유행하는 코딩교육학원 등에서 내세우는것은 "많은 공부 및 과제량"이다. 일례로 한 코딩학원은 학원 이름 자체를 "스파르타"로 지었고, 삼성전자에서 운영하는 SSAFY라고 불리는 삼성 청년 SW 아카데미에는 소개 유튜브에 "합격하면 바로 개발자 될 줄 알았는데 고3 뺨치는 공부량?"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실제로 이 학원이나 코스의 공부와 과제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들을 보면 사회가 20대 청년들에게 "성장"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는것을 알 수 있다. 아마 빡센 공부량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자, 라는 취지로 해당 영상들의 제목과 썸네일을 달았을것이다. 성장의 공리"성장"이란 무엇일까? 막연하게 느껴지는 성장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 성장의 "공리"를 찾아보자. 공리란, ..

기독교 2024.08.13

노예제도와 기독교

기독교는 노예제도를 옹호하는가?이 질문은 사실, 많은 수의 백인 기독교도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삼았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의문점일 것이다. 그당시 그들은 자신들의 노예 무역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했다. 그렇다면 진짜 성경은 노예제도를 옹호하는가? 먼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초기 기독교가 어떤 집단에게 인기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초기 기독교 신자들기독교가 로마 제국에 퍼지기 시작한 서기 1세기 경, 기독교는 노예들, 가난한 이들에게서 환영받았다.교회는 인종과 계급을 차별없이 모두를 환영했다. 도시에서 개인은 익명의 존재로 전락하며, 그로 인해 고독감, 외로움을 맛보기 일쑤일 것이다. 따라서 교회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안도감을 주었다. 이렇게 친교와 통일을 강조하는 교..

카테고리 없음 2024.08.07

사랑과 효율성

효율적인 것은 좋은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인것 같다. 실제로 효율성을 추구하면 이익이 극대화되고 이것은 좋은 것이 맞다. 만약에 조금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NGO단체라 할지라도, 효율성은 당연히 추구해야하는 것이다. 유니세프 등과 같은 단체에서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많은 목숨을 기아로부터 살리는 것이 목표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서, 효율적인 것은 '사랑'일까? 더 나아가, 예수님은 효율을 추구하셨을까? 성경을 읽다보면 생각보다 예수님은 효율적으로 사역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효율성을 추구한 자는 따로 있었다. 그는 '가룟 유다'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배신자로 유명하지만, 그는 재정을 도맡아 관리하던 사람이기도 하다. 요한복음 12장에는 값비싼 ..

기독교 2024.06.21

부자와 기독교

부자는 나쁜것일까? 성경에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통과하는것보다 더 어렵다고 적혀있기도하다. 이 말만 들으면 부자는 탐욕스럽고 나쁜것처럼 보인다. 과거에 부를 축적하는 방식은 딱 하나였다. 바로 남의 재산을 가로채는것. 그것이 세금이든, 전쟁에서 승리한 후 얻은 전리품이든, 남의 부를 가져오는것이 부를 축적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파이의 크기는 일정하며 내가 이 파이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것이 부자가 되는 길이었다. 따라서 과거에 부자는 탐욕스러울 수 밖에 없다. 다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마태복음 19장 24절 -하지만 자본주의가 생겨나며 한가지 중요한 전제가 뒤집어졌다. 바로 파이의 전체 크기가 커질수..

카테고리 없음 2024.06.18

운명에 대한 인식: 그리스vs히브리vs장원영

그리스적 세계관 (헬라적 세계관) 에서의 운명헬라, 즉, 그리스적 세계관에서는 운명이 굉장히 중요하다. 운명은 인간이 피할수없는 것이고, 심지어 신조차도 그 운명에 메여있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운명의 여신들인 '모이라이'들은 제우스조차도 건드리지 못한다. 그들은 대단히 독보적인 존재이며, 심지어 신조차도 거역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운명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오이디푸스가 대표적인 예. 그가 영웅인 이유는 운명의 장난에 농락당했으나, 결국 끝까지 그 운명과 맞서 싸웠기 때문이다. 그는 파멸을 알고있으면서도 진리를 찾기위해 싸웠다. 결국 운명이 꺽지 못한것은 오이디푸스, 인간의 의지이다. 이는 자연스레 인본주의로 이어진다. 신보다 인간의 의지, 지혜가 더 뛰어나다. 니체 ..

기독교 2024.06.07

기독교는 사실 원수를 사랑하라, 라고 말하지 않는다?

일반인들도 잘 알고 있는 기독교의 가장 대표적인 구절은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이다.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장 44절) 분명 이 구절에는 '용서'와 '관용'이라는 굉장히 큰 가치가 내재되어있다. 하지만 진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진정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인가?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해당 구절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사랑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다.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한가?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왜일까? 우리는 사랑을 한다고는 하지만, 실상 사랑 비슷한 것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에는 앞선 마태복음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관점이 구절이 ..

기독교 2024.05.19

예수의 부활은 실제하였는가?

이 질문은 기독교에선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죽은자가 부활한것은 믿는것이 불가능하다. 어쩌면 이것은 전인류적인 사기극이 아닐까. 사실 이러한 의문은 성경시대에도 있었다. 62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63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마27:62-64] 이 구절을 보면 그당시에도 죽은뒤 사흘후에 부활한다는 예수의 생전가르침을 실현시키기 위해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할까봐 ..

기독교 2024.05.17

인류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읽는 방법

지난 포스팅에선 왜 성경을 읽는 것이 어려운지에 대해 설명해보았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번 포스팅에서 해당 책, 성경을 제대로 읽는 방법에 대해 적어보겠다. 1.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모든 책들은 각각의 책마다 쓰여진 의도가 있다. 과학책은 과학 지식을 전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고, 소설책은 작가가 창작해낸 스토리를 독자에게 전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이처럼 각각의 책들은 저마다 쓰여진 의도가 있고, 이것을 고려하여 독서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읽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는 책과 저자에 대해 큰 오해를 할 것이다. 과학책을 소설책처럼 읽으면 안되고, 소설책을 과학책처럼 읽으면 안되는 것처럼 말이다. 성경 또한 마찬가지로, 이를 읽기 위해서는 맨 먼저 이 책이 쓰여진 의..

기독교 2024.04.26